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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미주사회

주님,왜그러셨어요?

법왕청 2012. 5. 2. 02:18

 

[생활 속에서] 주님, 왜 그러셨어요?

[LA중앙일보]
곽건용 목사·나성향린교회
기사입력: 04.30.12 17:40

오래전에 신문에서 바둑 전문기자가 쓴 칼럼 한 편을 읽었다. 유창혁과 조훈현이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서 왕위전 결선을 치르고 있었다.
적막한 산사에서 벌어지는 운치 있는 대국 바람불 때마다 풍경소리 은은히 들리는 고요한 사찰에서의 대국이었다.

수덕사 방장이던 원담 스님은 대국자에게 특별히 경내 흡연을 허락했다니 원칙을 유보한 융통성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대국이 치열하게 전개되자 참관하던 김수영 6단이 대국자에게 "오늘은 장소가 장소니만큼 살생을 삼가 달라"고 농담하자 법장 스님이 "어차피 살생을 해야 한다면 상대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곧 불심이지요."라고 받았단다.

법장 스님 말씀이 머리에 찬물 한 바가지 부은 것 같이 시원한 깨우침을 준다. 모든 종교가 살생을 금하지만 불교에서 그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람뿐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살생을 금하니 말이다. 그런데 스님은 "어차피 살생을 해야 한다면 상대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곧 불심"이라고 말씀했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이란 조건이 붙어 있으니 모든 살생을 허하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나는 불자니까 못해.'가 아니라 오히려 '불자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게 옳다고 했다. 부득불 누군가가 계율을 어겨야 한다면 신심 깊은 자가 어기는 게 옳단다. 부득불 살생을 해야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더 큰 살생을 막기 위한 경우 밖에 없지 않을까? 그 경우엔 남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게 불심이라는 뜻이겠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굳이 안식일에 만성병 환자들을 고치신 얘기가 적지 않다.

손이 마른 환자는 당장 고치지 않는다 해도 죽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예수께서 율법을 어기는지 살펴보다가 꼬투리 잡으려는 자들이 눈 크게 뜨고 지켜보데 왜 굳이 예수께서는 보란 듯이 만성병 환자를 안식일에 고치셨을까? 오늘날에도 "주님 왜 그러셨어요?"라고 예수께 묻고 싶은 사람들 많을 게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실까? "네가 바로 손 마른 병자라면 그렇게 말하겠니?"라고 대답하시지 않을까?

사찰 내 흡연을 허락한 것은 주지스님의 종교가 가져야 할 융통성을 살생에 대한 법장 스님 말씀은 종교가 갖고 있는 궁극적인 자유를 보여준다.

스스로 정해놓은 계율을 넘어설 자유 말이다. 하지만 이 자유를 아무 때나 써도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어차피 누군가 살생을 해야 한다면… '이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이 '어차피'는 그것이 남을 위한 길일 때 더 나아가서 모두를 위한 길일 때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께서는 '살생'도 아니고 '활생'하자는데 거기 딴죽을 거는 자들과 상대하셔야 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이웃이 멀리 있는 식구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말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