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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효예불교 연합회/一鵬 法王님

[스크랩] 1960년대 서경보스님의 행적과 미주한국불교 최초사찰 조계선원 발굴 인터뷰 (2)

법왕청 2012. 9. 25. 01:10





1960년대 서경보스님의 행적과 미주한국불교  최초사찰 조계선원 발굴 인터뷰 (2)
 

 


미국인들과 참선하는 고성스님

 

질문: 혜능선원 주소를 아십니까?
스님: 주소는 모릅니다. Easton은 리하이 대학교(Lehigh University)가 있는 곳이고 큰 제철공장 베들렘이 있는 곳입니다. 큰 도시입니다. 나는 폰 바일러라는 사람이 땅을 기증하였기 때문에 이곳으로 갔습니다. 폰 바일러는 설계사로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버어마에서 수년간 일했기 때문에 자기 집이 비니까 나에게 불교선원을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사람이 선을 좋아합니다. 이 사람은 일본 사람 밑에서 선을 수 십 년 동안 한 사람입니다.
질문: 영어로 혜능선원을 뭐라 했습니까?
스님: Hui Nueng Zen Center라고 했습니다.
질문: 몇 년 동안 있었습니까?
스님: 거기서 내가 리하이대학 교수 겸해서 한 3년 있었습니다.
질문: 여기서 스님은 무슨 활동을 하였습니까?
스님: 거기서는 용맹정진 하였습니다.
질문: 참선요? 주로 참선?
스님: 예. 대중이 약 70명쯤 됐습니다.
질문: 사는 사람이 70명이나 됐어요? 굉장한 것이네.
스님: 굉장한 것도 아니지.
질문: 그 당시에요?
스님: 예 그 당시에는 회교도 수피라는 그룹들에서 많이 왔습니다. 그들이 반은 차지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히피들. 학생들은 학교 다니다 그만두고, 교수들도 교편 잡다 그만두고. 그 당시에 히피들은 고급이었습니다.
질문: 당시에 반전운동 하던 사람들도 있었겠는데요.
스님: 그렇습니다. 월남전 반전세력들이지요.
질문: 그러면 여기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이었습니까? 일주일 혹은 하루 단위로 어떤 프로그램이었습니까?
스님: 매일같이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예불을 하였습니다. 예불 모신 후에는 참선을 45분씩 두 번 앉았습니다. 아침 먹고는 달마스쿨이라고 강의를 하였습니다. 매일같이 하였습니다. 매일같이 해도 사람이 많으니까. 결혼식도 해주고, 또 상(喪) 나면 장례식도 해주고 다 해주었습니다.
질문: 그러면 정기법회는 없었나요?
스님: 매일같이 365일 똑 같습니다.
질문: 안거는 없었나요?
스님: 동안거, 하안거 그런 것은 되지 않고 매일같이 안거입니다. 견성하는 날까지 안거입니다. 이때가 제일 좋았습니다.
질문: 아 그렇습니까? 전성기였군요.
스님: 그때 불교가 제대로 잡게끔 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히피들이 흩어지면서 수피 그룹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질문: 수피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스님: 회교도들의 선입니다. 불교의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질문: 회교도들의 수행자이군요.
스님: 그렇습니다. 회교들의 골수분자입니다. 순수한 종교인들입니다.
질문: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불교의 참선을 합니까?
스님: 예. 참선으로 통합니다. 다른 것으로는 안통하지요. 교리로는 안통하지요. 오직 참선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선이라고 하면 인도 중국, 일본, 한국, 미국 전부 동일합니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있는 모습은 인도사람이지만 그 삼매내용은 똑같습니다. 그것이 교리입니다.
질문: 스님은 이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안타까운 일이나 어려운 점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스님: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질문: 곤란한 일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스님: 곤란한 일도 없었습니다.
질문: 회원들끼리 갈등이 있으면 스님이 중재도 해야할 것이고, 회원들의 남녀관계 문제도 발생할 것 아닙니까?
스님: 그렇죠. 상담은 해 주지요. 참회라고 해 가지고.
질문: 그 외에도 재정문제라든가 그런 것이 없었나요?
스님: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았습니다.
질문: 그래도 계획도 세웠을 것이고…?
스님: 계획은 없었습니다. 계획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지. 사람이 계획을 세우면 계획은 일종의 욕심입니다. 사람이 지성으로 살면 감성이 앞지르지를 못하게됩니다.
질문: 교재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스님: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입니다. 그 외에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질문; 사진은 없습니까? 발려주시면 복사하고 드리겠습니다.
스님: 결혼식 할 때 찍은 것들이 있었는데 지금 어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리하이대학교 정확하게 영어 스펠링이 무엇입니까? 왜냐면 스님으로서 강의한 것은 시기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거든요.
스님: 리하이대학교에서는 우리 사원에 젊은 사람이 바글바글하니까 확까닥 한 것입니다. 총장이 직접 와서….
질문: 리하이 대학교에서 몇 연도에 강의하였습니까?
스님: 1972년도인가, 1970년도 초반입니다.
질문: 그러면 강의한 것이 강사자격입니까? 아니면 신앙지도입니까?
스님: 학교에서 임명한 강사입니다.
질문: 강의료를 받았나요?
스님: 받았습니다.
질문: 한 학기당 얼마 받았습니까?
스님: 그때 내가 학교 등록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일주일에 5일 나갔고.
질문: 일주일에 몇 시간씩 강의했습니까?
스님: 매일 2시간씩 했습니다.
질문: 일주일에 10시간 했네요? 많이 한 강의네요.
스님: 아, 그럼요. 내 갈 때마다 강의실이 꽉꽉 찼으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한 것이지.
질문: 강의는 어떤 강좌를 했습니까?
스님: 정신문학이지요. 싸이카라지 디파트먼트에 속했지요. 싸이카라지에 속하면서도 철학을 한 것이지요.
질문: 아, 그래요. 그러면 이것은 종교학이 아니네요. 인문학이네요. 인문학 중에서도 철학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스님: 철학이지요.
질문: 봄 학기, 가을 학기로 몇 년 강의했습니까?
스님: 한 3년 했습니다.
질문: 강사로 했습니까?
스님: 쉽게 말하면 전임강사지.
질문: 스님 사진 없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자료입니다. 대학에서 찍은 사진 같은 것 없습니까.
스님: 학생들이 사진 많이 찍었습니다. 강의하는 것 크게 확대하여 걸기도 했는데 지금은 없습니다.
질문: 스님 가지고 계신 사진 없습니까? 사진이 없으면 스님이 만든 잡지에 없습니까?
스님: 현재는 없습니다. 계간으로 나온 잡지에 실린 것 많았는데 없어요.
질문: 뉴스레터의 이름이 Mok Tak이었다면서요?
스님: 매달 나왔어요.
질문: 매달 나왔는데, 그런데 그게 하나도 없어요?
스님: 사무실을 자주 옮기다 보니까, 오래 된 것은 버려서 하나도 없어요.
질문: 너무 안타깝다. 있어야 하는데 이게….
스님: Mok Tak지에 손으로 목탁 그린 그림이 실렸는데.
질문: 스님 저서 『Zen Teaching of Emptiness』는 서점에서 팔렸나요?
스님: 예.
질문: 몇 년도에 출판되었지요? 초판만 발행하였지요?
스님: 예. 1982년에 초판만 나왔어요.
질문: Buddha World는 몇 연도부터 나왔나요?
스님: 처음 발행이 1978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1993년인가 1994년까지 발행하다가….
질문: 창간호 있습니까?
스님: 책이 좋았는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질문: 이스톤에 있었던 것이 혜능선원인데 주소를 모르겠습니까?
스님: 51 무슨 로드야. [계속] 2003년 8월 158호


 

                                                                  

 

출처 : 미주현대불교
글쓴이 : 파란연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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