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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자유게시판

사랑인가, 자비인가 .

법왕청 2012. 11. 20. 04:58

                                                       사랑인가 자비인가       이원익 LA 불사모 회장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사랑이란 말은 유행가 가사에나 나오는 생경한 말이었지 집안 밥상머리에서나 또래들이 어울리는 골목길에서 자연스레 내뱉어지는 토박이 어휘는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자식간이나 더군다나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이런 낱말이 오간다는 것은 대낮에 남들 앞에서 발가숭이가 되는 것처럼 난처한 일이었다. 어쨌든 상당히 낯간지럽다고나 할까 육두문자는 아니지만 함부로 내뱉지 못할 이질적인 낱말인 건 사실이었는데 내가 시골 출신이라서 우리만 그랬었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라고 사랑을 안 하고 산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은근하고 진하게 마치 우리 머리 위에는 언제나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듯이 너무나 당연하게 어른은 아이를 보살피고 아이들은 제 또래를 좋아하고 챙기고 누구든 서로를 생각해 주며 커 왔으니까 그 하늘 전체를 구태여 무슨 말로 일컬어야 한다면 부를 말이 있을까? 사랑일까? 자비일까?

그런데 그 후 접해진 세상은 사랑이란 말이 너무나 흔하고도 널리 아무렇게나 흩뿌려져 있는 사랑 모자라는 세상이었다. 이래도 사랑 저래도 사랑 있어도 사랑 없어도 사랑. 그래서 옛 성인들이 말씀하신 진정한 사랑이 오히려 빛이 바랠 지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걸핏하면 두 팔을 들어 올려 손끝을 정수리 위로 모으는 사랑 표시가 유행인데 좋게도 보이고 좀 실없어도 보인다. 누구는 사랑도 이렇게 자꾸 표시하고 연습해야만 가능하다고 하지만 말끝마다 '아이 러브 유'를 갖다 붙이는 것엔 아직 익숙지가 못하다.

이렇듯 예전과 달리 사랑이란 말이 흔해진 데는 기독교와 서양문화의 영향도 클 것이다. 아시다시피 기독교는 사랑을 앞세운다. 가장 극적인 말씀이 '원수를 사랑하라'이다.

불교에서는 자비를 말하는데 이는 기독교의 사랑과 어떻게 다른가? 결국 같은 것일까?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 뉘앙스를 달리하는 부분도 있어 보이고 자비가 사랑보다 좀 더 분석적인 말 같아도 보인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에는 그 종교에서 뜻하는 특별한 의미가 가미 되어 있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자비의 '자(慈)'는 마치 어미가 귀여운 자식을 바라보는 눈길 같은 자애로움이다. 그리고 '비(悲)'는 불쌍한 부모나 불구의 형제자매를 마음 아파하듯 상대를 애처롭고 불쌍하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렇게 두 가지가 겹쳐진 것이 자비인데 그냥 조금 그런 마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를 잴 수 없는 그지없는 마음 곧 무량심을 내라는 것이다. 자무량심 비무량심이다.

부처님의 아들딸들이 남들을 대할 때 가져야 할 그지없는 마음으로는 이밖에도 두 가지가 더 있는데 그 세 번째가 남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여겨 같이 즐거워하는 '희(喜)'무량심이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시샘을 내거나 애써 무관심한 척 하는 게 능사인데 이는 불자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남을 대할 때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고루 사랑하는 것이다. 공평보다 더 큰 정의 더 큰 사랑은 없다. '사(捨)'무량심이다. 자.비.희.사 이것이 불자들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