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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해외,미주불교

선수행 핵심은 분별망심 세척

법왕청 2012. 12. 5. 19:19

                                  禪修行 核心은 分別妄心 洗滌

 

우리는 한둥지에 두가지의 마음이 같이 동거하고 있다. 하나는 나고 멸하는 생멸심이고, 또하나는 나고 멸함이 없는 청정 부동심이다, 중국의 도덕경에 보면 궁극적 실재를 도라고 하고 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선 사상에서 보면 흥미있는 일이다.


도덕경에 말하기를, “그것은 분화 되지는 않았지만 완전한 것이고, 해와 달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어왔고, 소리도 모양도 없으며,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변하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서 움직이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며, 이것을 우주의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무엇이라 이름 할 수 없어 도라고 부르네.” 라고 했다.

중생은 생멸심과 부동심의 두가지 마음 중에서 생멸심을 참마음으로 알고 집착을 하고 있다. 때문에 고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 생멸심은 부평초 같은 망념으로 참마음이 아니다. 다만 파도의물결과도 같아서 바람에 의하여 물결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바람을 재우게 될 때 파도의 물결이 없어지듯, 선수행에 의하여 생멸심의 파도를 재우게 될 때 고요한 본 마음의 당처가 드러나게 된다. 적적하고 또 적적한 곳에 허물이 단절되면, 한조각 본성이 텅비어져 훤출하다. 쌓여있든 업장이 녹아져 없어지므로 아집에서 벗어나고 아집에서 벗어나면 집착이 없어지므로 고정관념 등 모든 구속으로 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평등성지인 순수의식만 있어 갈등없고 시비없이 평온한 곳이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마음이란 소견이나, 부처란 소견이나, 법이란 소견을 세우게 되면, 벌써 화살은 서쪽으로 지나가 버린 것이다. 개구 즉착이라 입을 열면 곧 틀린다. 필자 역시 한 방망이를 맞으면서 할 수 없이 입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 유명한 유마 거사에게 부처님의 날고뛰는 수제자들이 몰려가서 천지를 움직이는 달변들을 토해냈으나. 끝에 가서는 유마거사의 말없는 묵언 앞에서 두 손 들고 항복했다.

일정시대 해인사 주지스님이 초하루 법문을 하는데 “모든 법이 내입으로부터 나왔도다.” 하고 말하자 저 말단구석에 앉아있던 낡은 누더기를 입은 수좌가 묻기를 “그러면 그 입은 어데로부터 나왔습나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주지스님은 아무말도 못했다. 그 누더기 입은 수좌가 금강산 석두스님인데 후일에 조계종 종정을 지낸 효봉스님의 은사가 되었다.

이법은 언어에 있는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언어를 여읜 것도 아니다. 중국 천태산에는 한산, 습득, 풍간 세분의 성인이 계셨다. 하루는 습득이 마당을 쓸고 있는데 그 절의 주지가 물었다. 그대는 풍간선사가 주워 왔기 때문에 이름을 습득이라 하였다. “그대의 본래 성은 무엇인가?” 그러자 습득이 마당을 쓸던 비를 땅에 내려놓고 차수(두 손목을 잡음)를 하고 서 있자 그 스님이 거듭 물었다. “그대의 본래 성이 무엇인가?” 습득이 땅에 내려놓았던 비를 집어들고 가 버렸다.

또 명주땅에 포대화상 이라는 성인이 있었다. 항상 온갖 물건을 넣은 자루를 어깨에 메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어느날 포대화상에게 한 승려가 찾아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그러자 포대화상은 포대를 내려놓고 차수(두 손목을 잡음)를 하고 있었다. 그 승려는 다시 물었다. “다만 이것뿐입니까 따로 다른 무엇이 있습니까?” 포대화상은 포대를 어깨에 메고 가버렸다.

이 처럼 습득과 포대화상. 두분의 행동에서 보여준 깊은 뜻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뜻이 무엇인가? 실은 필자가 지금 너무 지나칠 정도로 법을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명마는 채찍 그림자만 봐도 알아듣고 달음질칠 줄 안다.

필자가 항상 말하지만 선수행은 분별망심을 세척함에 있다. 분별 망심이란 본체의 거울에 끼어있는 먼지이기 때문이다 먼지를 닦아냄으로 인하여 본래의 거울을 볼 수 있고 분별 망심을 세척함으로 인하여 진리의 현현함이 있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아 알고자 하는 현현한 그 자리는 요리조리 분석해서 분별심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미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성적인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청량골을 바로세우고 곧바로 실참 참구를 해서 일념 미생전의 우주가 생하기 전의 세계를 관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우주가 생하기 전 나의 본래의 모습인가?” “다만 입을 벽에 걸어놔야 겨우 가까워 질 것이다.” 옛 선사들이 말하기를 “피눈물이 나도록 울어도 소용이 없네. 입을 다물고 남은 봄을 보냄만 못하도다” 했다. 여기에 좋은 소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 함으로 부처님께서도 장장 49년간을 종으로 횡으로 설법하셨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수많은 대중 앞에서 묵연히 아무말 없이 연꽃 한송이를 들어 보일 뿐이었다. 여기 연꽃 한송이를 들어보인 곳에 부처님 사십구년의 설법이 다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그 뜻을 알고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러면 연꽃을 들어보인 그 뜻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토기뿔 속에 이미 달이 떠있는 소식이다” 라고 하겠다. “갈수록 중중첩첩이다. 토끼뿔은 무엇이며 달이 떠있단 무엇인가?” 사량심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만고불역의 진리가 잠겨있다고 하겠다.

드디어 미소짓고 있는 가섭존자에게 부처님의 심심묘법을 전하게 된다. 그리고 가섭존자를 초조로 해서 그로부터 28대 존자가 그 유명한 달마대사다. 후일에 달마대사는 인도로부터 바다길 수만리인 중국으로 건너와서 동토의 초조가 되어 양무제를 만나는 등 우여곡졀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마침내 대사는 숭산의 소림굴에서 구년동안을 면벽하고 있으면서 인연의 성숙함을 기다린다. 드디어 때가 이르러 혜가대사를 만나 법을 전하게 되니 혜가대사는 29대 존자가 된다.

그로부터 33대조사인 육조 혜능스님 이후에 이르러서는 화두공안선의 황금시대를 이루게 된다. 마조, 백장. 황벽, 임제, 위산 ,앙산, 남전, 조주. 법안 등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이 화두공안선의 맥을 이어갔다. 우리나라는 신라의 도의국사가 당나라 지장선사로부터 784년 에 화두 공안선맥을 처음 받아온다.

“이후로 부터 전북 실상사, 강원도 흥영사, 경북 봉암사 등 구산선문을 이루면서 번창한다.” 그러나 삼국통일이후 고려말에 이르러서는 잠시 침참기를 만나게 된다. 그러자 고려 태고보우 국사가 1347년에 56대 조사인 원 나라의 석옥청공(옥돌로 만든 토굴에 서 지냈기에 석옥이 국사의 호가 됐다.) 국사로부터 화두 공안선맥을 다시 받아와 법을 세우게 된다.

태고보우국사는 초조 가섭으로부터 57대 조사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으로 가서는 58대 환암혼수 63대 서산대사로 이어져서 이조말에 경허선사에 이르니 선사는 75대 조사가 된다.

경허선사 아래에서 76대인 만공, 수월, 한암, 혜월 선사들에게 전해졌고. 그리고 이분들 밑에서 성월, 석두, 용음, 혜암, 보월, 고봉, 경봉, 전강. 효봉, 금봉, 운봉, 금오, 동산, 설봉선사들이 77대의 선맥을 이어왔다.(중국은 화두 공안선맥이 끊어진 상태다) 한국의 불교는 이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화두공안선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게 한 것이다. 화두공안선은 한번 깨침에 돈오 점수를 끝마치게 되는 부모 모태에 들기 전의 본래면목과 조우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두선은 우리민족의 얼이 잠겨진 1300년을 이어온 한국적인 수행법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야 말로 세계적일 것이다. 오늘의 한국불교가 세계의 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화두공안선이라 하겠다.

                                                                                                                                                                      <법일 스님/샌리앤드로 죽림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