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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해외,미주불교

달라이 라마 80년의 삶이 시대를 설득한다

법왕청 2015. 7. 8. 15:40

달라이 라마 80년의 삶이 시대를 설득한다 

     
지난 5일 혼다센터에서 설법…80세 생일 기념 특별 집회
법문 주제로 '자비' 선택해, 달라이 라마 자체가 메시지

 

 

그는 14대 달라이 라마다. 원래 이름은 텐진 가쵸. 1935년 7월6일 티베트 동북부 탁체르 지역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달라이 라마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해진다. 환생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이전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 승려들이 전통에 따라 환생한 차기 달라이 라마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달라이 라마는 최근 들어 공공연하게 “환생 전통은 내가 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라마의 환생 제도를 악용해 중국 정부가 후계자를 세울 것을 우려해서다. 실제로 지난 3월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계승 여부를 위한 결정권은 중국에 있다”고 했다. 그런 이유에서 달라이 라마가 입적할 경우 향후 중국과 티베트는 더욱 심각한 갈등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달라이 라마가 늘 외쳐온 평화는 가깝고도 멀다.

'자비' 의미에 주목하는 건 각박한 시대가 평화를 갈망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평소 "생일보다 기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는 책 '행복의 지혜'에서 "기일은 그 사람을 기억하는 날이다. 생일 축하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나중에 그 사람을 기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는 매일이 생일이다. 매일 맞는 새날을 잘 살면 인생은 의미가 있다. 그런 마음으로 가능한 한 타인에게 자비를 많이 베풀며 살자"고 했다. 달라이 라마가 여든 번째 생일(7월6일)을 남가주에서 맞았다. 5일 애너하임 혼다센터에서는 그의 80세 생일을 기념하는 '글로벌 컴패션 서밋'이 개최됐다. 오늘날 시대는 달라이 라마가 살아온 80년이란 시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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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The Holiness(성스러운존자)"라 부른다. 그의 이미지가 축약된 명칭이다. 달라이 라마의 존재적 본질은 '자비'다. 티베트 불교에서 그는 '관세음보살(대자비를 베푸는 보살)의 화신'이다.

글로벌 컴패션 서밋에서 달라이 라마는 설법 주제로 '자비'를 택했다. 그의 정체성이 시대를 향한 메시지로 연결된 셈이다. 그는 자비를 평화의 기반으로 여긴다. 미국이 기독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수만 명이 달라이 라마의 법문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반면 그러한 현상은 평화의 부재를 방증하는 시대적 현실로 해석된다.

LA지역 나란다불교센터 김소연 학장은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면서 달라이 라마의 자비와 평화의 메시지는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달랜다"며 "어쩌면 그의 삶 전체가 메말라 가는 시대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생 자체는 시대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로 전환됐다. 달라이 라마의 80년이 평화를 갈망해서다. 그는 비폭력으로 투쟁한다. 티베트의 정치적 불행과 망명의 슬픔을 관용과 헌신으로 승화시켰다.

 

 

이치란 박사

IBS USA 불교대학 종매스님은 "미국에서 달라이 라마의 삶은 인권이 억압되는 티베트에 대한 동정, 무거운 교리보다는 명상, 체험, 경험 등을 중시하는 티베트 불교의 신비적 특성과 맞물렸다"며 "게다가 타종교 핍박, 전쟁, 독선적 이미지 등 기독교제국주의에 대한 회의는 오히려 달라이 라마의 '관용주의'에 매료되는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종교사회학계는 지금을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시대'로 규정한다. 달라이 라마의 구도적 자세와 수행적 삶은 물질 문명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종교 너머의 세계를 보게 한다.

불자 주현덕(68.LA)씨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철저한 사원교육에 의해 5세 때부터 철학, 문학, 불교 교리 등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박학다식하고 설법을 들어보면 영적인 통찰력과 깊이가 대단하다"며 "물질 문명 시대는 오히려 인간을 '영적인 것'에 목마르게 했는데 달라이 라마는 시대적 빈곤을 풍부한 자비적 영성과 삶으로 채워준다"고 전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 성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그는 현실에서 '공감'의 감정을 끌어낸다. 유창한 영어, 유머 감각, 농부의 아들 등 그의 독특한 배경과 분위기는 달라이 라마를 좀 더 편안하게 수용하는 요소다.

LA지역 박재욱 법사는 "타종교인과 다르게 달라이 라마는 탈권위적이면서 평소 할아버지 같은 소탈한 모습을 보여왔다"며 "항상 미소 짓는 얼굴, 호탕한 웃음소리, 자주 치켜 올리는 짙은 눈썹, 공식 석상에서 서슴없이 신발을 벗는 자연스러움, 그러다가 금방 자세를 잡아 명상에 잠기는 모습은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이라고 했다.

리처드 기어 등 티베트 불교에 심취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영향력도 그가 대중적으로 친숙한 이미지를 얻는데 한 몫 했다. 이를 바탕으로 달라이 라마는 공개 강연 및 법회 등을 통해 과감하게 티베트 불교의 대중화를 추구했다.

그 흐름을 타고 스탠퍼드, UCLA, 하와이 대학 등 주류 대학교에서도 불교학 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이는 달라이 라마가 미국에 자연스레 인식되는 토양이 됐다.

시대적 갈증과 고갈은 그의 존재성을 부각시켰다. 빠름이 느림을, 화려함이 소박함을,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암묵적으로 그리워하는 시대 속에 그의 메시지는 되레 힘을 얻었다.

그 힘은 조용하고 부드러워서 더 강하다.

내가 만난 달라이 라마는…관저 앞까지 배웅 해준 그분”

“내 영어 악센트 이해해 달라”
솔직하고 소박한 모습에 감명


세계불교도우의회 이치란 박사(사진)는 달라이 라마를 5번이나 직접 만났다. 이 박사는 세계불교네트워크 한국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1991년부터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추진해 왔지만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로 번번이 막혔다. 미주현대불교 창간 26년 행사를 맞아 LA를 잠시 방문한 이 박사를 지난달 22일 만났다.

-어떻게 만났나.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려고 했다. 나는 초청장을 들고 인도 다람살라를 직접 찾아 갔다. 그때가 1991년 10월 이다. 하지만, 이듬해 한중 수교를 앞두고 한국 정부가 난색을 표명해 취소됐다. 이후 그분을 계속 초청하려고 1992년, 2005년, 2006년, 2010년에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한중 관계 때문에 그분은 비자를 받을 수 없었다.”

-첫인상이 어땠나.

“그는 영국 총독이 임시 관저로 쓰던 곳에 사는데 낡은 소파 한두 개와 작은 테이블이 전부더라. 삶이 참 소박했고 그 모습 그대로 사는 분이었다. 지금까지 5번이나 친견했다. 시간이 지나도 항상 한결 같은 모습이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는데.

“불자에게 그는 ‘성하(聖下)’다. 그런데 실제 만나보니 참 인간적이고 격이 없었다. 헤어질 때도 친히 관저 앞까지 배웅을 해줬다. 내 등을 어루만지며 ‘감사하고, 고맙다’고도 하셨다. 처음 만났을 땐 영어가 조금 서툴렀다. 영국인 가정교사에게 영어를 배워 발음에 그쪽 악센트가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하셨다. 참 솔직했다.”

-대화할 때 부담은 없었나.

“그분은 분위기로 깊이를 전한다. 하지만, 정말 편안했다.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시고, 나의 말을 진지한 자세로 경청해 주셨다. 그분의 위치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참 겸손하구나’라는 느낌이었다.”

-그는 한국을 많이 알고 있나.

“신라의 원측 스님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해심밀경’도 여러 번 읽었다고 했다. 한국을 정말 가고 싶어한다. 한국의 경제 성장도 놀랍다고 하셨다. 실제 방한을 위한 실무가 진행될 때는 적극적이고 의욕적이었다. 하지만, 비자 문제로 방한이 취소될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워하셨다. 대만, 일본, 몽골은 다 가는데 한국만 못 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불교계로서는 안타까운 일인데.

“그분의 삶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정치적 문제로 본인의 고향(티베트)도 갈 수 없는 분이다. 사실 미국도 중국과의 견제 카드로 그분과 교류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그래서 달라이 라마가 항상 평화를 말하는 것 아닐까. 미국 불자들이 부럽다. 미국에는 종종 오시지 않나.”

-마지막으로 만난 건.

“5년 전이다. 그때는 뭐랄까…나도 늙었고 그분도 많이 늙었다. (웃음) 정말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큰 스님’ 같았다. 그래도 말투나 행동은 매우 정정하셨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LA중앙일보]    발행 2015/07/07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5/07/06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