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사문 법영/자유게시판

가장 위대한 사랑

법왕청 2013. 11. 18. 19:09

                                             가장 위대한 사랑

 

                                                                                                                                                                                                    혜민 스님

 

영어 공부가 한창 재미있었던 중·고등학생 때 나는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이라는 노래를 특별히 좋아했다.

 

‘가장 위대한 사랑’이라 번역할 수 있는 이 노래는, 휘트니 휴스턴 특유의 가창력 있는 멋진 목소리와 함께 가사가 좋은 것으로 많이 알려져 영어 공부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이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란 연인 간의 사랑도,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랑은 부모에게 받는 사랑처럼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이거나, 연인에게 사랑을 주듯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사랑의 대상이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던 때였다.

 

하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많은 사람의 아픔을 듣고 상담을 해줄수록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에 담긴 의미가 점점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 의식이 끊임없이 외부로 향해 있기 때문에 내면으로 의식을 돌려 자기 스스로를 알아차리거나 한발 더 나아가 자기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은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즉, 사랑을 하려면 그 대상이 뚜렷하게 보여야 하는데 ‘나’라는 대상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를 사랑하라는 것인지 잘 모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자기 스스로를 쉽게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있는데, 바로 고통의 순간들이 그렇다.

 

 삶 속에서 갑자기 고통이 몰려오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바로 느껴지지 않던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나요?” 참 우매한 질문인 듯하지만 이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다. 일단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무엇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나 사회로부터 세뇌당한 ‘이렇게 살아야 옳다’ 하는 기준들이 심어져 있다.

 

그 기준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기준에 맞지 못하게 사는 스스로가 불완전하게 느껴지거나 심지어는 죄책감까지 들어,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좀 문제가 있다라고 느낀다.

 

특히 부모가 당신 스스로의 삶에 불만이 많았던 경우 아이에게 칭찬보다는 짜증과 화, 손찌검을 하기 쉽고, 그럴수록 아이는 부모의 불행이 자신 탓이라고 여기며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가 어린 자기에게 했듯 혹독한 말로 스스로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만약 자신이 이런 경우라면 우선 자신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을 알아채고 멈춰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독여보자. “사람이니까 실수하는 거야. 완벽한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이 꼭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은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정해 놓은 거잖아. 나는 그 기준들보다 지금의 내 삶이 더 소중해.”

 다음으로는, 내 안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고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해야 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에게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

 

어렸을 때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경우,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남을 우선시할 뿐 정작 자기 자신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이런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가 타인에게 했듯이 굳이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서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원하게 된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선택 권한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다고 스스로 느낄수록 내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이 죽을 때 하는 가장 많은 후회가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고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만 살았던 것이라고 한다.

 

너무 늦게 후회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눈치 보는 일 그만하고 하나씩 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나에게 지나치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가끔은 “미안하지만 안 돼” 하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평소에 ‘넌, 참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사람일수록 사회에 나오면 자신의 능력이나 심리상태를 무시하고 무조건 남의 요구만 들어주다 결국 감당 안 되는 순간에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내가 있으니까 상대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무조건 다 해주면 상대는 고마워하기보다는 당연하다고만 느끼기 쉬워진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가사 중에 ‘사람들이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도 내 안의 존귀함만은 빼앗아갈 수 없어요’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남들도 존귀하게 여길 줄 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