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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미주사회

‘한국 예술의 암흑기’ 묻혀 있던 작품 발굴

법왕청 2014. 10. 15. 09:55

                                      ‘한국 예술의 암흑기’ 묻혀 있던 작품 발굴

 

폴 테일러 박사 - ‘한국전쟁 시기의 발견되지 않은 예술품들’ 저서 발간

“한국전 당시 미군에게 팔기 위해 만든 예술품들 오늘날 한류의 원조죠”

 

 

폴 테일러 박사는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아시아 문화역사 프로그램 디렉터다. 워싱턴DC 자연사 박물관 내 한국 유물 전시관인 ‘코리아 갤러리’(한국관)의 설치를 주도했고,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 무단 반출됐던 조선 왕실 옥새 및 각종 국보급 유물 반환에 큰 공을 세웠다.

 

이런 그가 최근 ‘한국전쟁 시기의 발견되지 않은 예술품들’(UndiscoveredArt rfom hte Korean War)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미국에 전달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인물들 중 하나인 폴 테일러 박사를 인터뷰했다.

“한국전 당시 미군에게 팔기 위해만든 예술품들 오늘날 한류의 원조죠”

지난 한 해에만 800만명의 관람객이 찾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3층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돼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박물전시 기자재들로 가득한 아래층의 전시실과는 사뭇 다르게 오래된 대학 연구실의 분위기가 풍기는 이곳에서는 수많은 큐레이터와 학자들이 스미스소니언재단이 수집한 유물들에 대한 분류및 연구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미로처럼 얽힌 복도에는 수천개의 철재 캐비닛이 설치돼 있고 그 안에는 귀중한 유물들로 가득했다. 그 중한 연구실에 폴 테일러 박사가 지도하는 아시아 문화역사 팀이 모여 있다. 커다란 창문 넘어 보이는 연방 의회 의사당이라는 기가 막힌 풍경을 빼면 3면이 온통 책장으로 뒤덮인 건조한 연구실이었다.


-이번에 발간한 책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명성황후의 동생인 민영휘씨의 외손자로 캘리포니아주에 거주중인 체스터 장 박사(한국명 장정기)가 소장한 한국 예술품 등을 중심으로 1950년대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예술품들을 소개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의 한국 유산 프로젝트(KoreanHeritage Project)를 위한 각종 연구 자료와 논문을 토대로 각종 해설을 달았고 주미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등의 도움이 컸다(편집자 주: 책은총 60페이지로 작품집에 대한 소개와 해설, 작품소개로 구성돼 있다. 소개된 작품들은 한국전쟁 당시 제작된 이중섭, 김관호, 박수근, 변관식 등 유명작가의 미술작품들과 철제, 목각, 도예, 자수작품 등 총 60여점이다).


-소정 변관식 선생의 ‘춘조’라는 작품을 커버에 쓴 이유가 있나

▲이 작품은 동양화로 유명한 작가가 부산 피난시절 가마에서 일하며그린 접시화다. 앙상한 가지의 나무숲 길을 두 선비가 간격을 두고 걷고있는 모습이 봄으로 표현된 한국의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정이라는 작가의 호를 한글로도 써넣은 흔치 않은 작품이라는 가치도 있다.


-특별히 한국전쟁 당시의 예술품을 흥미를 가진 이유는

▲그 당시 한국은 최악의 상황에놓여 있었다. 정부도 민간인도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했고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로 살기 위한 작업에 몰두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예술품들은 그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들에게 팔리거나 고위 장성들이 한국정부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정 박사가 미국 내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많은 미국 군인들이 그런 경로로 한국에서 구입한 작품들을 미국으로 가져왔고 집안에 장식했다. 한국의 문화가 최초로 가장 직접적으로 전파된 순간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요즘 한국정부와 언론이 부르짖는 ‘한류’는 그 당시에 처음 생겼다고 본다.


-이중섭, 박수근 등의 작품과 함께 미술사적인 중요성을 찾기 힘들어 보이는 무명작가들의 작품들도 비중 있게 수록돼 있는데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점은 한국전쟁 당시에 발표된 당대의 예술품이다. 그리고 작품의 값어치나 작가의명성보다는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포탄피를 이용한 각종 장식품, 목각인형들, 벽걸이 예술품 등에는 당시 작가들이 인식하고 있던 한국 문화와 해외에 알리고자 했던 한국의 이미지들이 잘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청동 포탄피에 거북선을 양각한 공예품은 요즘 기념품 가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이지만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예술품중 하나다. 포탄피라는 소재에 한국인들의 가장 큰 자신감의 상징인 거북선을 당시에 흔치 않던 최신 기법으로 양각했다. 이같은 작품들을 하나의 대중예술의 예로 볼 때 하나하나가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학계는 싼값에 팔려나간당대의 예술품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예술품들 중에는 당시에는 같은 값으로 팔렸지만 훗날 가치를 인정받은 이중섭, 박수근, 변관식 등의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편집자 주: 폴 테일러 박사는 고고학자다. 단순한 50년대 한국 예술품들의 소개서가 아니라 한국의 암흑기에 묻혀 있던 예술작품들을 그가 고고학자의 입장으로 발굴했다는 생각에 그의 책이 새롭게 다가 왔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예술에 권위자라고 알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와는 어떻게 첫 인연을 맺게 됐나

▲1983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을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큐레이터 조창수씨 때문이었다. 수십년 동안 한국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한국관 설치를 위해 워싱턴 지역 한인단체들과 여러분들을 만나며 한인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문화적 자긍심을 접하게 됐다. 조창수씨에게 한국의 역사와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2009년 세상을 떠난 그가 아직도 그립다.


-한국전쟁 동안에는 얼마 전 한국 정부로 반환된 조선왕실 ‘옥새’를 비롯해 많은 국보급 문화재도 미국으로 흘러들어 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인들은 한국전쟁 기간에 한국에서 많은 예술품들을 구입했으며 이 중에는 국보급 유물도 상당하다. 아직까지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 상당수가 미국 내에 개인 소장의 형태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스미스소니안 박물관 아시아담당 디렉터라는 지위 때문인지 나에게 소장하고 있는 한국 예술품에대한 감정 등을 문의를 해오는 소장가들이 가끔 있다. 지난해 반환된 고종황제의 옥새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발견됐다. 소장가가 문의한 옥새의 존재를 미국 국토안보부에 보고했고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로 반환됐다. 당연하고 공정한 조치였다.

하지만 내가 그 ‘사건’에 관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개인 소장자들이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웃음)


■폴 테일러 박사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아시아 문화역사 총책임
한국관 설치 등에 힘써

폴 테일러 박사는 UCLA를 거쳐 예일대에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40여년간 아시아, 유럽, 중동의 민족학에 관련한 수십여권의 저서와 논문들을 출간했다. 캔사스주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에서 자란 폴 테일러 박사는 현재 버지니아 알링턴에 거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