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보다 138년 앞서는 最古 금속활자본 찾았다"
박상국 문화유산연구원장
"2012년 보물 지정 '증도가'는 목판본이 아닌 금속활자본"
공인땐 세계출판史 다시 써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1377년 간행)보다 138년이나 앞서는 13세기 초 금속활자본이 발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내 대표적 서지학자인 박상국(69)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지난 2012년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는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라며 "이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앞선 1239년에 간행된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고 16일 밝혔다. 학계의 공인을 받게 되면 세계 출판사(史)를 다시 써야 하는 획기적인 주장이다.
◇"금속활자본을 목판본으로 평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하 증도가)는 당나라 승려 현각(玄覺·665~ 713)이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증도가(證道歌)의 구절 끝에 송나라 남명(南明) 법천선사(法泉禪師)가 계송(繼頌·증도가에 덧붙여 노래한 시)을 붙인 책. 고려 고종 26년(1239년) 당시 무신 정권 최고 권력자인 최이가 쓴 발문이 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이 발문을 "이전에 주자본(鑄字本·금속활자본)으로 간행한 증도가가 있었지만 전해지지 않아 각공(刻工)을 모집해 목판본으로 복각하게 했다"고 해석해왔다. 1984년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목판본이 보물 758호로 지정됐다.
이후 2012년 경남 양산 김찬호 공인박물관장이 "또 다른 '증도가' 판본을 소장하고 있다"며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고, 문화재위원회는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과 마찬가지로 1239년 주자본을 번각한 목판본"이라며 '보물 제758-2호'로 지정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 증도가의 금속활자본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활자본에서만 나타나는 특징 뚜렷해
박 원장은 "지난해 6월 김 관장이 찾아와 이 책은 금속활자본인데도 목판본이라고 잘못 평가돼 있으니 바로잡아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6개월 동안 본격 연구한 결과 금속활자본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 뚜렷하게 보였다"고 했다.
근거는 크게 6가지다.
①각 면의 테두리 인쇄 상태가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목판본)은 깨져서 틈이 많은데 같은 부분에서 이 판본은 틈 없이 멀쩡하고
②이 판본은 활자마다 높낮이가 달라서 같은 글자에도 농담(濃淡) 차이가 심한데 이는 금속활자본의 특징이며
③조판 기술이 미숙해 활자가 밀려 움직인 흔적이 선명하고
④쇠똥 자국이 뭉쳐 있고
⑤쇠가 녹으면서 쇳조각이 붙은 철편이 보이며
⑥일부 글자는 먹이 찍히지 않아 보사(補寫·새로 칠한 것)한 글자가 많고 한 개의 활자에도 높낮이가 달라 먹이 묻어나지 않아서 획에 가필한 흔적이 많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목판본은 평평해서 먹이 골고루 찍히고, 활자가 밀리거나 철편 현상은 생길 수 없다"고 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두 판본 활자 비교
◇"최이의 발문을 잘못 해석"
박 원장은 "1984년 '증도가'를 보물로 지정하면서 최이의 발문을 잘못 해석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 발문 중 '於是募工 重彫鑄字本 以壽其傳焉(어시모공 중조주자본 이수기전언)'을 "그래서 각공(刻工)을 모집해 '주자본을 바탕으로 다시 판각해서' 길이 전하게 한다"라고 해석해왔으나 "이에 공인(工人·각수)을 모아 '주자(鑄字·금속활자)로 다시 새겨(重彫)' 책을 만들어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고자 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
즉, 최이의 발문은 "주자본을 목판본으로 다시 새겼다"는 뜻이 아니라 "'주자본 증도가'로 다시 새겨 오래 전하게 하고자 한다"는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새긴 것은 주자본 증도가라는 것이다.
서지학자인 조형진 강남대 교수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금속활자의 쇠똥 자국이 아니라 먹을 칠한 붓솔의 부스러기가 붙은 흔적일 수도 있다. 같은 활자를 재사용한 흔적을 찾으면 활자본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원장은 이 같은 내용을 오는 21일 열리는 보조사상연구원 제110차 정기 월례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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