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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해외,미주불교

선의 세계와 연결한 것이 선(禪)시조

법왕청 2015. 3. 27. 12:43

무산 조오현 큰 스님과 UC버클리 권영민 교수와 대담

 

“시조는 한국인의 희비애락을 담은 영혼의 소리”
한국의 전통 시조를 선의 세계와 연결한 것이 선(禪)시조

 

 

무산 조오현 큰 스님(오른쪽)과 권영민 교수가 20일 UC버클리 데이빗 브라우어센터에서 ‘영혼의 울림’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하루의 일과가 바로 나의 참선
1960년대부터 시조창작 활동


버클리대학 한국학센터는 지난 20일 데이빗 브라우어센터에서 ‘무산 조오현 그리고 영혼의 울림’이라는 주제의 한국 문학 소개 행사를 성황리에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시조시인으로 유명한 무산 조오현 큰 스님과 버클리대학 초청으로 동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 하고 있는 권영민 교수가 대담을 나누웠다. 무산 스님의 발표내용은 신지원 교수(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영어 통역으로 진행됐다.

무산 조오현 큰 스님(83)은 대한불교 조계종 기본선원의 조실스님으로 설악산 백담사에 머물고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조 창작을 해 오면서 ‘선시조’라는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였다. ‘세계무대위의 한국문학’을 표방한 이날 행사는 클레어 유 교수의 개막인사를 시작으로 데이빗 맥캔 하버드 대학 데이빗 맥캔 교수의 ‘시조란 무엇인가’라는 강연과 뉴욕주립대학 뉴 팔츠의 하인즈 인수 펜클 교수의 ‘무산 조오현의 선(禪) 시조’라는 주제 강연이 있었다.

또 무산 스님과 권영민 교수와 대담 후에는 시조 시인 홍성란, 박영희씨의 시조낭독과 이유경 가곡창 명인의 창과 고진호의 대금, 홍세린의 대금 연주등 시조와 전통문화공연이 함께한 문학의 향연으로 펼쳐졌다.

권영민 교수 주관의 행사에는 버클리대학 학생과 시조에 관심있는 학자, 시조마당 삼연회(회장 임문자),버클리문학회 회원등이 참석하여 전통우리가락인 시조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행사말미에는 미국의 계관시인이며 버클리대학 교수인 로버트 하스 시인도 참석하여 축하 인사를 했다. 본보는 이날 문학행사중 무산 조오현 큰 스님과 권영민 교수가 나눈 ‘영혼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가진 대담 내용을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손수락 기자>

권영민 교수
존경하는 무산 조오현 큰스님을 이 자리에 모시고 말씀을 여쭙게 되어 저 개인적으로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큰스님께서는 산중 절간에서 생활하시는 분이신데, 이렇게 먼 여행길에 오르시어 우리 버클리대학을 찾아 주셨으니 다시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큰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종립기본선원 조실스님입니다. 

 

 큰스님의 법어를 듣기 위해 우리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많이 오셨고, 이 지역에 사시는 동포들께서도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뜻깊은 행사의 주관자로서, 오늘 성황을 이루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저는 큰스님을 백담사에서 가끔 뵙고 덕담도 듣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말씀을 여쭙기는 처음입니다.

 

 여러 가지 여쭙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먼저 큰스님의 절간 생활은 어떠하신지,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여쭙겠습니다. 아마도 여기 오신 분들이 모두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조오현 스님
권영민 교수님 고맙습니다. 버클리대학 한국학센터의 여러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흥미로운 발표를 해주신 맥캔 교수와 하인즈 교수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강당에 이렇게 많이 찾아주신 청중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산중의 절간 생활이라고 하지만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싶으면 화장실 가고, 남의 비위 맞출 일 있으면 비위 맞춰주고, 아첨할 일 있으면 아첨하고, 뭐 이러다 보면 하루해가 다 갑니다. 이것이 나의 하루 일과입니다.

권 : 아하, 그러시군요. 절간의 생활이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저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큰스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본선원의 조실스님이시니까, 큰스님의 가르침 아래 많은 선승들이 스님의 문정(門庭)에 모여 참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들도 자주 큰스님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참선은 언제 어떻게 하시는지요?

조 : 방금 교수님이 내 절간 생활과 하루 일과를 물었고 나는 아주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나의 하루 일과가 바로 나의 참선입니다. 교수님과 내가 이렇게 마주 앉아 서로 한 번 쳐다보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한 것이고, 교수님은 듣고 싶은 말 다 들은 것입니다. 이 외에 따로 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권 : 아무래도 스님 말씀이 너무 어렵습니다.

조:나는 어렵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이 어렵게 듣고 있습니다. 선은 말과 글이 아닙니다. 선 학자들이 선을 말과 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말과 글을 따라가면 다 죽습니다. 그러므로 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기결박입니다. 비유하면 토끼의 뿔이나 거북의 털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토끼는 뿔이 없고 거북은 털이 없는데 토끼 뿔 거북이 털 이야기를 내가 이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한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렇게 한 번 바라보면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다 마음입니다. 이쯤에서 그만 합시다.

권 : 알겠습니다. 방금 큰스님께서 ‘일체유심조’라 하시니 큰스님의 시조 「마음 하나」가 생각납니다. 제가 한번 읊어 보겠습니다.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다 놓아도
빛깔도 모양도 향기도 없는
그 마음 하나는 끝내들지도 놓지도 못했더라


큰스님,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맘이 무엇이길래 천하장수도 들지도 놓지도 못합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일이 꼬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릴 때가 많습니다.

조 : 교수님, 그것을 내가 알면 미국 말도 못하는 늙은이가 왜 여기 앉아서 꼭두각시 노릇을 하겠습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경에 보면, 마음의 근원은 원래 고요적적 아주 담적하다고 합니다. 빛깔도 향기도 모양도 없이 이름 지을 수도 그림 그릴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하늘이 덮지 못하고 땅이 싣지 못한다 합니다. 실로 만법을 구비하여 갖추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답니다. 옛 사람들은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거울은 맑고 비어서 능히 만상을 비춰 보입니다. 거울에 티끌이 끼인다 하여 그 밝음이 근본적으로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때를 벗기면 다시 맑아집니다. 마음도 이와 같다고 합니다만 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권 : 오늘 큰스님께서 우리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제 큰스님의 시조에 대한 말씀을 여쭙겠습니다. 한국의 전통시가인 시조를 선(禪)의 세계와 연결시킨 것이 스님의 선시조라고 앞서 하인즈 펜클 교수가 말씀을 했습니다. 큰스님은 선과 시를 어떻게 구분하시는지요?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외면하다시피 하는 시조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 :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선과 시는 ‘시선일미(詩禪一味)’라 하여 시와 선이 한 가지 맛이라고 합니다. 시와 선은 한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한 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달리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젖을 만들고 독사가 먹으면 독을 만들듯이 그 사람 성품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은 나무의 “곧은 결”이고 시는 나무의 옹이 “점박이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은 내가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고 시는 인생에 대한 물음에 답이라고 할까요. 설혹 시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언어를 만나는 그 순간 언어의 때가 묻어 버렸기 때문에 시는 마음을 조작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첨언하면 마음에 옹이가 박혀 점박이 결로 나타나는 것이 시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무런 작의가 없다고 불가사의한 무작묘용(無作妙用)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선시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비유하면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으면 맑은 호수에도 똑같은 하늘의 달그림자가 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달그림자를 바라볼 수는 있어도 그대로 건져낼 수는 없습니다. 건져내는 그 순간 달그림자는 부서지고 맙니다. 결국 시는 언어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무작묘용도 다만 말일 뿐입니다.

권교수님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이시며 40년 넘게 비평활동을 하셨습니다. 내 논리에 공감을 하십니까?

권 : 큰스님께서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조: 중국의 시성 두보(杜甫)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 위해 시를 쓴다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나는 누굴 놀라게 하기 위해 시조를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내 시조를 하인즈 교수는 선시조라고 좋은 말씀을 해 주셨지만 나는 내 작품을 굳이 선시조니 그냥 시조니 그런 구분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교수님도 내 시조를 선시조라고 봅니까. 평론가 입장에서 냉정하게 비판하신다면 말입니다.

권 : 하인즈 교수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옛 중국의 시경(詩經)에서 시(詩) 언지(言志)라고 했듯이 스님도 시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시는 시를 쓴 그 시인의 마음을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이 말씀은 시를 인간 정서의 언어적 표현이라고 정의한 서양의 시인들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큰스님은 평생을 참선수행 해오신 선사이시니 큰스님의 시(詩)는 자연스럽게 선심(禪心)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조 : 알겠습니다. 나더러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시조를 고집하느냐고 하셨는데 교수님은 한국 시조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제 내가 질문을 좀 하고 싶습니다.


권 : 큰스님께서 오늘 이 자리 주인공이십니다. 큰스님께서 제게 물으시니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시조는 잘 아시다시피 한국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노래해온 시가 형식입니다. 한국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한국인의 말로서 그 형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 노래해온 “소넷”이라는 단구의 시 형식이 있고, 중국 사람들은 단형의 ‘절구(絶句)’를 즐겨 노래해 왔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하이쿠”라는 짧은 시가 형태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 형식과 더불어 한국에는 “시조”라는 3장 형식의 시가 있었던 것이지요. 한국인들은 시조를 널리 사랑했습니다. 위로는 제왕으로부터 아래로는 촌부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시조를 한 수 정도는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의 마음을 잘 드러내어 주는 것이 시조 아니겠습니까. 큰스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조 : 나는 한국 시조의 전래과정은 잘 모릅니다. 따라서 서양의 ‘소넷’, 중국의 ‘절구’, 일본의 ‘하이쿠’도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잘 모릅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민족인들 원(願)과 한(恨)이 없는 민족이 있었을까마는 우리 조상만큼 원과 한이 많은 민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언제 지었는지 모르지만 “하늘에는 잔별이 많고 우리네 가슴에는 수심도 많다”는 노래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 들으면 잊지 않고 곧잘 흥얼거린다는 그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시조도 언제 누가 그 형식을 만들었는지 나는 모릅니다만 시조에는 인간살이의 희비애락이랄까 우비고뇌라 할까 그런 애달픈 가락이 사람을 사무치게 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한국 시의 근원은 시조이고 시조는 한국인들의 영혼의 모음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열 마디 말보다는 시조 한 수 음미해 보는 것이 시조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 : 큰스님께서 시조를 한국 시의 근원이고 한국인의 영혼의 소리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합니다. 큰스님께서도 좋아하는 옛시조 한두 편 읊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