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사문 법영/자유게시판

돈, 돈. 그리고 돈.

법왕청 2013. 12. 29. 15:06

돈, 돈, 그리고 돈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돈이 필요하다. 물물교환 수단에서 출발해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인류에게 심어준 돈은 과연 무엇일까.

중국은 현재 4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돈을 일본은 약 1조5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자랑한다. 물론 대한민국도 3250억 달러라는 거액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돈은 무엇을 의미할까.

달러는 종이에 불과하니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해줄까. 안 바꿔준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인류가 만든 화폐제도 역사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유럽과 미국의 화폐제도 내지 중앙은행제도 설립 과정을 훑어보자는 얘기다.

인류가 국가간 무역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무역 대가로 지급해야 하는 '돈'이 아주 중요한 요소다. 내가 열심히 돈 들여 만든 제품의 대가로 받은 돈이 종이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국제무역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 논리는 한 국가로 한정해도 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모든 국가는 '자국 화폐'를 가지고 있고 그 돈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재무장관 화이트와 영국의 화폐금융 전문가 케인즈가 주도해 만든 국제통화기금(IMF) 제도가 전후 자유서방 국가들의 번영을 이루었다. IMF 체제는 간단히 말해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가 되고 그 달러를 금에 연계시켜 금 1온스 당 35달러를 지급하는 금환본위제도다. 물론 1971년 8월 미국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정지를 발표함으로써 사실상 브레턴우즈 체제가 종말을 고했지만 아직도 달러는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 화폐 관련 역사를 보자. 흔히 알고 있는 금본위제도 혹은 은본위제도 등은 상품화폐제도를 의미한다. 금화나 은화 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어 거래를 보장했다. 그런데 문제는 금과 은의 수급이 문제다.

모든 상품은 수요와 공급이 적정하게 이루어져야 경기가 과열되거나 침체를 겪지 않는다. 경기가 활성화되려면 그에 따라 소요되는 돈이라는 유동성이 시중에 공급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 경우 금본위제도에서는 금이 공급돼야 시중에 필요한 유동성이 공급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프리카나 남미 등지에서 새로운 금광이 발견돼야 그 양만큼 유동성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필요한 만큼의 금이나 은의 양이 공급되지 않으면 무서운 경제질병 중 하나인 디플레이션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잃어버린 20년'을 겪는 일본의 디플레이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아베 정부가 무제한 엔화를 찍어내는 양적완화정책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겁내지 않고 돈을 무제한 찍어 공급하고 있다. 과거 금본위제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금의 법정화폐제도에서는 가능하다.

화폐를 귀금속 등으로 가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은 나라는 독일이다. 20세기 초 독일 경제학자의 주장은 조세권을 지닌 국가가 책임을 지고 자국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화폐과잉공급에 따른 물가인상 문제는 중앙은행이 정부와 독립해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져야 하지만 통화가 굳이 금.은에 묶일 이유는 없다는 견해다.

영국 경제학자 케인즈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땅에 파묻혀 있는 금을 캐 네모진 덩어리로 만들어 지하금고에 넣어 둘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19세기 영국의 전성시대인 빅토리아 여왕 시절 인류 역사 최초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중앙은행으로서 발권독점권을 지니게 된다. 당시 이코노미스트지 편집장이었던 월터 베이지호트는 '롬바르드 스트릿'이라는 저서에서 영란은행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인 '최종대부자(Last lender of Resort)'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란은행은 명실상부한 근대 중앙은행으로 부상하게 됐다.

최종대부자 기능이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 1조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마련한 이론적 근거가 된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최종대부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도 1909년 라히스뱅크에 발권독점권을 주고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갖추게 만든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힘든 것 같다. 정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중앙은행 총재에게 지시해 마련할 수 있다는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실제 그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결론은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해 '물가를 책임지는' 국민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이나 은본위제가 아닌 이상 유로화든 달러든 그 가치를 지켜주어야 국제결제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있고 세계는 번영과 평화를 지향할 수 있다.

오명호 / HS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