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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해외,미주불교

“산골 암자에서”

법왕청 2014. 4. 24. 19:26

                                                      “산골 암자에서”

 

                                                                                                                                        도범 스님(보스턴 문수사 주지)

 

산을 멀리서 보면 구름이 스쳐가는 높은 봉우리가 보이고 웅장한 모습이나 산 전체의 윤곽만 보입니다. 그러나 산속에 들어가 보면 오히려 산의 정상은 보이지 않고 울창한 나무와 기암괴석이며 계곡이 반깁니다.


이름 모르는 잡풀 꽃과 여러 종류의 나무를 보게 되며 산새들과 철새들 때로는 산토끼와 노루며 산 짐승들을 만납니다.

 

고사리, 취나물, 버섯, 도라지, 더덕 등 산채나물이며 머루, 다래, 오미자 등 산열매들이 주렁주렁 의롭습니다.물소리 바람소리는 산중의 언어요 숨소리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산 숲의 몸짓입니다.

 

 

깊숙이 박힌 바위들은 묵묵히 무게를 가르쳐 주고 산 위의 뜬구름은 한 조각 삶을 비유하며 자막처럼 지나갑니다.


모든 자연이 연기법으로 살아가는 연계를 볼 수 있으며 날마다 성장하고 변해가는 모습으로 무상사를 일깨워줍니다. 그리하여 산 문밖으로 뻗치는 망상의 에너지를 되돌려 주며 내심 이렇게 마음 다스리며 암자에서 살게 합니다.

 

한 조각 기왓장에도 불조의 얼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서 혼자 살아도 일거수일투족이 조심스럽습니다.


어느 땐 산에 살면서도 산이 안 보일 때가 있으며 그런 때는 헛된 망상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입니다. 풀벌레 소리가 더 잘 들릴 때는 밤이 고적할 때이며 식생활이 소박할수록 산 숲이 더 향기롭습니다.

 

산을 마주하고 묵묵히 앉아있을 때는 실답게 살고 있으며 수행자의 본분 사를 잘 지키고 있을 때입니다.


스님들은 대중과 함께 엄격한 청규 속에서 잘 살다가도 홀로 떨어져 나와 산골암자에서 자신의 세계를 곧잘 열어갑니다. 여섯 개의 거문고 줄은 따로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릴 수 있는 것이지 함께 붙어있다면 울리지 않습니다.

 

또한 그 줄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어야지 너무 떨어져 있어도 소리의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거문고 줄같이 스님들의 사이도 그렇게 유지하며 목소리도 각각 다릅니다.


대철선사를 어떤 젊은 스님이 찾아가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산이다.”라고 선사는 답해주었습니다. “저는 도를 물었는데 선사께서는 왜 산으로 답변하십니까?” “그대는 산밖에 모르니 어떻게 도를 알겠는가?”라고 선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또 선객이 대철선사를 찾아와

 

“도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바로 눈앞에 있네!”라고 선사가 가르쳐주었습니다.

 

“제 눈에는 어째서 보이지 않습니까?”

 

“나 라는 생각에 가려서 보지 못하네.”

 

“그렇다면 스님은 보이십니까?”

 

“내가 있고 그대가 있으면 더욱 보지 못하지.”

 

“그럼 누가 봅니까?”

 

“나도 없고 그대도 없으면 누가 보겠는가?”라고 선사는 답변을 하셨다 합니다.


有時奪人不奪境 ( 유시탈인불탈경)
때에 따라서 주체를 버리고 객체를 남겨두며

 

有時奪境不奪人 (유시탈경불탈인)
때에 따라서 객체를 버리며 주체를 남겨두고

 
有時人境兩俱奪 (유시인경양구탈)
때에 따라서 주체와 객체를 모두 버리고

 

有時人境俱不奪 (유시인경구불탈)
때에 따라서 주체와 객체를 함께 남기노라.

 


-임제(臨濟) 의현(義玄) 선사가 만참(晩參) 법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