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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 법영/해외,미주불교

세월호 참사(慘死)와 불교(佛敎)의 실종(失踪)

법왕청 2014. 5. 7. 11:32

                                  세월호 참사(慘死)와 불교(佛敎)의 실종(失踪) 

 

 

                                                                                                                   현성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시카고 불타사 주지)

 

 

세월(歲月)이 어떻게 흘러왔기에 불교가 이렇게도 맥없게 되었을까?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의지할 곳이 불교가 되었어야 마땅할텐데 그렇지 못한 점, 참사와 인연된 모든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 없다.


불교는 남의 목숨을 죽이지 말라,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하지 말라, 이성간에 사음(邪淫)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라는 다섯 가지 계(戒)를 지킬 것을 서약하게 하는 종교이다.

 

신도들로 하여금 이 오계를 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지 적극적으로 교화하였다면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사고 후에도 사고에 대처하는 모습들에서 불교적인 이해와 자비, 지혜와 방편이 보이지 않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고 참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잘 해 왔지만 지나치게 안일한 방법으로 신도들을 교육시켜 온 것이 아니었나 하고 반성하게 된다.


이번 사고가 노출시킨 것은 사회 전반적인 밑바닥에서 오계를 지키지 않아서 생긴 보이지 않는 모순 덩어리가 어망처럼 얽혀 있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이에 대한 책임도 청정함을 가장 존귀한 가치로 삼는 불교계에서 마땅히 져야하고, 앞으로 이러한 모순을 청소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편안할 때 국가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불교는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갖추고 있다. 누구를 탓하기보다 천오백만이 넘는 불교 신자들을 상대로 오계 지키기 운동으로 자기 정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남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생명존중 사상이요,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하지 말라는 것은 남의 재물(財物)을 존중하라는 사상이다. 사음을 하지 말라는 것은 남의 정(情)을 존중하라는 사상이고,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은 말로써 남의 가슴에 상처를 줄 수 있으니 말조심하라는 사상이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 관리 능력을 잃으면 모든 일이 실수로 돌아가 남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니 철저하게 자기 관리 능력을 기르라는 사상이다. 불교의 오계는 철저하게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가 본인의 뜻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계이다.

그러면 불교는 상대를 위한 종교인가. 시야를 좀 더 넓혀 보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내 몸과 마음을 조용히 살펴보면, 내 몸과 마음 중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내가 상대하는 모든 대상에서 온 것이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조금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하니 상대를 위해 오계를 지키는 것은 상대가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고, 상대가 편안히 살고 있는 덕분에 바로 내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도움을 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법칙을 연기법(緣起法)이라 하는데, 이 연기법에 의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사상이 나오고, 태어남과 죽음이 없다는 불생불멸(不生不滅) 사상이 나오며, 또 이로부터 ‘나는 없다’는 무아(無我)사상도 나온다.

 

하지만, 신도님들이 오계를 경시(輕視)하거나 무시한다면 불교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상은 하나의 교리에 불과해 알맹이 없는 호두 껍데기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하니 불교는 세월의 파도 속에서 실종(失踪)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불교 신자들의 오계 지키기 운동으로 자기 정화운동을 참되게 실행해 오계를 지키지 못했던 일에 스스로 참회할 때 오계를 지키는 청정한 승단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오계를 두렵게 알고 지키는 승단은 세월의 파고가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파고를 즐길 줄 아는 불교함(艦)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세월의 파도를 즐기는 불교함이 있는 한 대한민국함도 세월의 파도를 즐기며 모든 국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큰 재난을 당하여 누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증오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애도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다. 특히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을 원망하거나 정부 혹은 관료들의 부족함을 질타하는 것은 상항을 더 어렵게 할 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에게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불교계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민심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긍정(肯定)을 부정(否定)으로 처리하면 부정의 결과가 오고, 긍정을 긍정으로 처리하면 긍정의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부정을 부정으로 처리하면 부정한 결과가 오고, 부정을 긍정으로 처리하면 긍정의 결과가 온다는 사실은 바로 불교의 인과법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국무총리는 자기의 직위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자녀들을 한 사람도 구제하지 못했으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그들의 분노를 총리에게 터트렸다. 그 분노를 몸소 받은 총리는 자기의 무능을 한탄하고 총리직 사표를 제출했다.

 

 이제 사표를 제출한 총리에게 책임회피라고 공격한다. 조난당한 학생을 한 명도 구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분노한 부모님들이 총리에게 막말을 하고 행동한 것은 부정을 부정으로 처리한 것이다. 부정을 부정으로 처리하였으니 총리사표라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표 제출이 총리의 책임회피라고 본다면 부정한 결과를 맺게 하신 분들이 총리 구명 운동을 펼치는 것이 어려운 가운데 피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부정을 긍정으로 처리하여 긍정적인 결과가 오게 하는 방편이다.


조난당한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대한민국. 정부나 관료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해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현상 그대로가 현재의 대한민국이요, 정부요 관료들이요, 국민들이요, 조난당한 학생들이요, 그 부모들이다. 나도 내 자녀들도 이 속에서 태어나 살아왔기 때문에 이 참혹한 현상과 나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나 희생을 보는 사람들이나 둘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학생들에게 염라대왕이 “너희들은 어디서 왔느냐?”라고 물으면 “대한민국” 외에 어디서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이를 대표하는 사람들, 피해자 가족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모든 힘을 합쳐서 부정을 긍정으로 처리하는 지혜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하는 의욕을 살려 가는데 불교계에서 한 몫을 해 주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