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전 스님과 함께 여래사 새출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한참 내리다 문득 그쳤다. 하늘을 덮은 구름 사이로 틈새가 벌어졌다. 벌어진 틈새로 햇살이 비쳤다. 가로변 나뭇잎들과 뒤뜰 풀잎들이 젖은 채 빛났다. 다시 흐려졌다. 바람이 거세졌다. 짙은 구름 커튼이 맑고 파란 하늘을 서둘러 가렸다. 미처 다 가리기도 전에 빗줄기가 흩날렸다. 그것도 잠시, 겨울비가 축이고 간 자리에 봄볕이 쏟아졌다. 몇 분이 멀다 하고 날씨는 금세 안색을 바꾸며 뒤척였다.
안에서는, 여래사 안에서는 달랐다. 일요일 오전 그 시간이면 늘 그러했듯, 신도들이 하나둘 모였다. 법당으로 가 삼배를 올렸다. 대개는 법당에 앉아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부처님을 염하느라 고요했다. 더러는 공양간으로 더러는 사무실로 가 저마다 맡은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모인 신도들이 대략 쉰 명에 달했다.
3일(일) 열린 여래사 법회는 1980년 10월 탄생부터 올해 1월까지 38년 3개월 남짓한 세월동안 여래사와 함께했던 설조 스님이 회주 소임을 내려놓고 광전 스님이 그 짐을 이어받은 뒤 봉행한 첫 정기법회였다.
설조 스님과 광전 스님의 여래사 회주(법적으로는 비영리 종교법인 여래사 이사장) 소임 교대는 설조 스님의 자진 사임 의사와 광전 스님의 취임수락 의사를 받들어 지난 1월 27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의결됐고 28일부터 관할당국에 신고하는 등 소정의 후속절차가 진행됐다.
“그런데, 아무리 밉다고 독을 먹여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몸이 하나인데 결국 자신도 죽게 되잖아요?”
정식 취임법회를 열자는 신도들의 청을 뿌리치고 평소와 다름없이 법회를 주재한 광전 스님은 법어 들머리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사이 나쁜 한 몸뚱이 두 쌍둥이 설화’를 꺼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우리와 그들이 둘이 아니며, 나아가 인간과 환경 또한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설화였다.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려면 내 이웃도 행복해야 합니다.”
일상적 편의를 위해 무심코 쓰는 비닐봉지 같은 것이 쌓이고 쌓여 결국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는 보충설명을 곁들이면서 북미주 동북부에 몰아닥친 영하(섭씨) 40도 혹한과 호주의 영상 45도 폭염을 대비시키기도 했다.
한국에서 곡성 성륜사 주지, 서울 광륜사 주지, 조계종 교육원 연수국장, 총무원 총무국장, 원로회의 사무처장, 중앙종회의원 등 요직을 두루 거친데다 1990년대 중후반 은사인 청화 큰스님을 모시고 남가주 금강선원 창건불사를 하고 카멜 삼보사에 머문 인연 등으로 미국사정에도 밝은 광전 스님은 여래사의 미래상에 대해서도 포부의 일단을 밝혔다.
한마디로 뭉뚱그려 ‘언제나 열린 여래사’였다. “여래사에 온 지 두 달 반이 됐는데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 법회(공양 포함) 말고는 오는 분이 없어요. 일요일 아니라도 좋고, 계모임이라도 괜찮고, 새벽에 공항 가셔야 된다면 여기서 묵고 가셔도 좋고...”
절뿐이 아니었다. 스님 자신을 ‘언제든지 기꺼이 쓰일 도구’로 내놓았다. “제가 좀 젊어서 여기 제 어머니 아버지 연배 되시는 분들 많으신데 어디 마켓 가실 때 운전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웃음에 섞여 박수가 터졌다. 박수는 합장으로 바뀌고 합장은 곧 앉은 자리 절로 이어졌다. 사홍서원으로 법회를 마무리한 뒤 스님과 신도들은 설날 차례를 올려 먼저 가신 조상님들과 그리운 이들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신도들은 보름법회에 맞춰 광전 스님 취임법회를 하면 좋겠다고 청했다. 스님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정태수 기자>
(예고: 지난해 여름 개혁열풍 속에서 맺어진 설조 스님과의 첫 인연, 지난 가을 샌프란시스코 경유 시카고행사 참석 때의 재회, 예정된 통도사 동안거 취소와 예정에 없던 여래사행, 그리고 새 이사장 취임 등 광전 스님 스토리를 보강취재후 적절한 시점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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